인터넷 국가를 고민하는 인터넷 대부 전길남 교수 2000-05-29  <황순현>
 
  “86년쯤 아일랜드 더블린시에서의 회의였을 겁니다. INET라는 국제 인터넷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휴게실에서 그때 알파넷(인터넷의 다른 이름)을 주관하는 NSF(전미과학재단)의 국제 협력담당 스티브 울프씨에게 ‘IP망을 전세계에 개방하는 것이 어때요’하고 말했습니다. 잠시 생각하더니 울프는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 한달뒤에 진짜 거짓말처럼 미국 아닌 국가에 IP망(인터넷) 직접 접속이 개방됐습니다”

갑자기 이상하게 서두를 시작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을 겁니다. 위 육성의 주인공은 국내 인터넷 대부인 한국과학기술원 전길남교수입니다. 전교수는 최근 국내 인터넷 10주기를 기념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과거의 에피소드를 회고했습니다. 사실 별 내용이 아닌 것 같지만 이 일화는 지난 69년 미국 국방성의 전산망으로 태동한 인터넷이 이후 학술망으로 발전한 뒤, 어떻게 해서 전세계적인 사이버공간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증언입니다.

◆1986년 인터넷 전 세계에 개방되다.

아시다시피 인터넷의 전신은 지난 1969년 미국 국방성 산하 고등연구계획국(ARPA)이 연구 프로젝트로 발주한 알파넷입니다. 그 때 알파는 군사연구망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탠포드대학과 UCLA등 미국 대학을 전용선으로 연결해 컴퓨터끼리 쉽게 자료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미국의 대학, 주요 연구 기관들의 접속이 늘아나면서 몸집이 커졌고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이라는 칭호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태동후 15년이 흘렀지만, 인터넷은 80년대 중반까지 어디까지나 미국과 몇몇 국가만을 위한 네트워크에 불과했습니다. 미국이 안보상의 이유때문에 나토(NATO) 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등)외에 다른 나라에는 인터넷과의 직접 접속을 불허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외 국가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인터넷 호스트에 직접 연결하지 못하고 값비싼 국제전화를 이용해 인터넷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길남교수의 에피소드는 바로 그런 상황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8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의 선구자들은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 인터넷을 개방하는 문제를 논의했지만, 그때 마다 벽에 부딪혔습니다. 초기 인터넷이 국방정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어느 누구도 선뜻 인터넷 개방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전교수의 설명입니다.

“그때 펜타곤출신의 스티브 울프씨가 NSF(전미 과학문화재단)에 오면서 문제가 풀렸습니다. 왜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해당 조직을 잘 아는 사람이 오면, 그 조직과의 문제가 잘 해결되는 사례가 많지 않습니까. 펜타곤 출신이 오니까 그렇게 어렵기만 했던 인터넷 개방 문제가 금새 풀렸습니다.”

물론 인터넷이 어느 특정인의 노력으로 이만큼 성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인터넷이 세계화되는데는 전길남 교수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는 추측입니다.

◆국내 인터넷의 대부 전길남 교수

전길남 교수를 직접 만난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전교수의 입에서는 영어-일어-한국어 발음이 뒤섞여 나옵니다. 한참을 들어야 아~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태어나기는 일본에서, 공부는 미국에서, 직접적인 활동은 한국에서 한 전교수의 인생 역정이 그대로 발음 속에 배어 있는 셈입니다.

전교수가 국내 인터넷의 대부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터넷이라는 단어조차 낯선 시절 국내에서 처음으로 원격지 컴퓨터끼리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온라인망, 즉 인터넷망을 처음 구축했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인터넷의 진가를 널리 알렸기 때문입니다.

일본 오사카 태생의 전교수는 오사카대학 전자공학과를 거쳐 캘리포니아주 주립대학 강사와 젯프러펄슨 정보시스템 연구원을 역임한 뒤 79년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이후 전교수는 경북 구미에 있던 한국전자 기술연구소(현재 전자통신연구소의 전신) 책임연구원으로 일합니다. 이 때 그는 서울대학교 전자계산기 공학과에 출강을 했는데, 당시 구미와 서울대학교간에 있던 디지털사의 컴퓨터를 TCP/IP망으로 연결합니다. 이 망의 이름이 바로 국내 인터넷의 효시인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입니다. 이때 전교수는 유닉스의 지적 재산권자인 AT&T사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은 두 컴퓨터를 UUCP(Unix to Unix Copy Program)을 이용해 처음 연결했습니다.

이후 이 SDN은 미국의 알파넷과 비슷한 경로를 거칩니다. 미국의 알파넷 처럼 국내 연구기관들사이의 온라인망으로 발전하면서 덩치가 커졌습니다. 이후 인터넷망이 전세계에 개방된 뒤, 전교수를 중심으로 한 HANA 프로젝트 팀들이 1년의 노력끝에 1990년 3월 24일 미국 하와이 대학과 전용회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해 국내 인터넷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호주 일본에 3번째였다고 합니다.

90년 국내 인터넷망인 HANA망을 개통할 때 KAIST의 전자계산소 직원이었던 삼성전자 김양욱과장은 “국내 인터넷 발전을 위해선 전교수님을 빨리 은퇴시키고, 국제 인터넷박물관을 만든 뒤 초대 관장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넷 발전의 선구자인 미국 빈튼 서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서도 유명세는 덜 탔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수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

지난 2월 28일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인터넷발전을 논의하기 위해 APRICOT(Asia Pacific Regional Internet Conference Operational Technoloies)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30여개국 600여개 기관에서 세계 유수의 인터넷전문가 1000여명이 참석해 인터넷의 발전을 논의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의 운영위원장인 탄튀위 아·태네트워킹그룹(APNG)의장은 인터뷰 도중 “전길남 박사의 제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해 이채를 띠었습니다.

82년부터 KAIST에서 교수로 일한 전교수는 수많은 인터넷 테키(Internet Techieㆍ인터넷 전문 기술인력)들을 길러냅니다. ‘시스템아키텍춰랩’이라는 연구실에서 끊임없이 컴퓨터 통신망을 연구하면서 허진호(아이월드네트워킹 사장) 정철(삼보컴 사장) 강성재(아이큐브사장) 박현재(두루넷 전무) 한상기(벤처포트사장) 이철호(아이소프트 사장)등 수많은 제자들을 벤처기업가로 이끌어 냅니다. 결국 이들이 사회에서 인터넷 관련 비즈니스를 하면서, 전교수는 자연스럽게 국내 인터넷의 대부가 됩니다.

그는 지금도 대전의 KAIST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컴퓨터 네트워크’라는 과목을 강의합니다. “수강신청 때는 학생들이 (멋모르고) 구름같이 몰리지만 너무 많은 숙제에 시달리다 중간에 상당수가 포기한다”고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ICANN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도메인 책임자로 활동

현재 전교수는 ICANN(The 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 Numbers)이라는 국제 협의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 중입니다. ICANN은 작년에 미국 정부가 인터넷의 관리 주체를 민간으로 넘기면서 만든 국제 협의체로 인터넷에 대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민간 기구입니다. 여기에서 전교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ccTLD(국가 도메인 코드)에 대한 관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kr’(한국) ‘jp’(일본)과 같은 국가 도메인에 대한 정책을 책임지고 있으며 이런 인물이 각 대륙별로 총 5명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인터넷의 힘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국가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 인터넷 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80년, 90년이 지난 뒤에 후대의 사가들은 아마 2000년이 인터넷 국가의 태동기였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는 인터넷에서도 강대국이 후진국을 조정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터넷 주소, 규약 등 주요 인터넷 정책이 인터넷 강대국의 전유물이 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네팔의 국가 도메인(ne)를 지금 한 호주인이 가지고 있습니다. 네팔의 국가 코드로 도메인을 얻으려면 그 사람에게 신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불합리합니까.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황순현 드림 icarus@chosun.com